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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WORD : 죽음, 타임슬립, 포기하지 않는

Goodbye My Baby

*교통사고 묘사가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

 

방금 이석민이 죽었다. 억겁의 세월을 보내며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감각이 김민규를 덮쳐왔다. 그래서 널 아직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슬프더라, 석민아. 김민규는 싸늘하게 식은 이석민을 안으며 이마에 입 맞췄다. 그리고 조용히 다시 그 날이 반복되기만을 바랐다. 물론 언젠가는 이 모든 순간이 끝나기를 바랐던 적도 있었다. 다만 그렇게 되면, 그 어느 날부터는 너의 죽음으로 마지막을 장식할 것만 같아서. 또 언젠가부터는 그 곳에 갇혀 있기를 자처했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그래도 그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김민규는 어떻게든 실마리를 찾으려 애썼고, 그게 그의 성격이었다. 

김민규는 10년 동안 반복되는 4월 1일에 살았다. 늘 이석민이 죽는 날. 그래. 정신을 다 잡으려 센 일수가 맞다면, 이번 죽음이 10년째였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웠다. 다시 살아난 이석민을 보고 그가 죽은 것이 꿈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똑같이 반복되기 시작한 하루들에 휩쓸리다 보면, 그의 죽음이 곧 다가온다는 것이 실감 났다. 처음에는 그저 그 상황에서 그를 구하려 했다. 그리고 분명 구했었다. 하지만 방심한 새에 이석민은 새로운 죽음을 맞이했고, 다시 눈을 뜨면 이석민이 죽는 날이 반복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그가 죽자마자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된다는 것은 다행이었을 지도 몰랐다. 그 수많은 세월 중에, 김민규는 어떻게 든 지치지 않고 그를 살리려 노력했고 근 1년 간은 그렇게 보냈다. 어느 날부터는 이런 내용과 관련된 모든 미디어를 찾아 보기 시작했다. 그곳에 분명 방법이 있을 것 같아서. 금세 잠에 든 이석민이 제 무릎을 베고 누워 있을 때, 김민규는 이석민이 숨을 쉬는 지 쉬지 않는 지에 대해서 매번 체크하며 영화를 살폈다. 그렇게 살펴도, 이석민은 결국 죽었다. 떨어지거나 떨어지는 무언가에 깔리거나, 무언가에 치이거나 넘어지거나, 누군가 그를 죽이기도 했었고, 그저 조용히 잠을 자듯 죽어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모든 영화와 드라마, 책 모든 것을 다 보고 난 뒤에도 2년이 흘렀다. 그곳에 나온 모든 것들을 시도해 봤지만 될 리 없었다. 그럼에도 김민규는 여전히 이석민을 살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자신이 모든 것을 그만 두는 순간, 그 역시 사라질 것 같다는 말이 더 옳은 이야기였다. 보이지도 않는 누군가에게 빌듯이 그를 살리려 노력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문득, 그가 먹고 싶어 하는 걸 물어보았다. 모두 사줬다. 하고 싶은 걸 모두 해줬다. 너 왜 그래, 하며 걱정하듯 쳐다 보는 이석민의 이마에 입 맞추기도 했었다. 못 견딜 때엔 좀 더 깊게 키스하고, 어느 때엔 그를 안기도 했었다. 숨에 가빠 자신만을 부르던 그가 다시 싸늘하게 식을 때마다, 김민규는 착실하게 울었다. 한 3년 정도가 더 지날 때까지.

어느 날부터는 눈물조차 말랐다. 그렇다고 해서 싸늘한 이석민에 적응 했다곤 말하지 못했다. 네가 정말로 죽는다면. 정말로 이 모든 것이 끝난다면. 나는 아마도 이보다 더 오랜 기간 널 잊지 못하겠지.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 때엔 오히려 감사하기까지 했다. 되돌릴 수 없는 하루로 늘 되돌아가고 싶다고 빌었을 테니까. 아마도 자신은 미래에서 준 기회를 잡으러 온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즈음엔 제정신이 아니었으나, 그 누구도 김민규에게 그 사실을 알려 줄 수 없었다. 늘 그의 곁엔 죽기 직전의 이석민만 존재할 뿐이었다.

*

그러다 ‘그’가 나타난 것은 그 다음 해부터였다. 이석민이 죽게 되면 분명 똑같은 하루로 다시 돌아가야 했지만, 갑자기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배경이 돌아가지도 않았다. 그 너머에서, 이석민과 똑같이 생긴 이가 걸어왔다.

수 년을 반복한 이래 없던 일이었다. 민규는 얼어 붙은 듯 ‘이석민’을 쳐다 보았다. 낯선 얼굴이었다. 머리 색도 처음 보는 백 금발로 물들어 있었다. 늘 풀어진 채 웃으며 자신을 쳐다 보던 얼굴과 다르게, 냉소적인 얼굴은 자신을 비웃듯 입가를 올렸다.

“너도 참 대단하다, 민규야.”

“...너, 누구야.”

김민규는 눈치가 빨랐다. 갑자기 생긴 이상 현상에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곧장 그를 경계하며 죽은 이석민을 끌어 안았다. 그러자 이석민이 아닌 이석민은 그런 그를 내려다 보다 다시 한 번 비웃었다.

“이 지옥을 끝내주려고 왔어, 민규야.”

“...뭐?”

가짜 이석민이 무언가를 말하려 하자, 다시 시간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눈을 떠 보면 4월 1일의 아침이었다. 김민규는 꿈을 꾸지 않게 된 지 수 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잠시 복잡한 머리를 문지르다가, 일단은 이석민을 찾았다. 언제나처럼 그가 하고 싶은 것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그러다 이석민이 죽게 되면 다시 한 번 시간이 멈췄다.

 

“네가 그만두고 싶다고 하면, 모든 걸 그만 둘 수 있어.”

“...”

미간을 찌푸리고 저 멀리서 들려 오는 목소리를 들었다. 언제나처럼. 식은 이석민의 시체를 안고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올렸다. 여전히 냉한 얼굴의 이석민이 자신을 바보 취급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늘 그렇게 날 살리려고 해도, 난 살지 못해. 민규야.”

“넌 이석민이 아니잖아.”

“...”

다시 시간이 흘렀다. 4월 1일의 아침이 돌아왔다. 언젠가 보았던 드라마와 영화들이 생각났다. 대부분 이 상황을 만드는 주체가 밝혀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으나, 가끔씩 존재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기도 했었다. 어느 곳에선 그저 신이라고만 했었고, 어느 곳에선 그저 악마라고만 했었다. 그 어느 것도 이름을 붙일 수 없어서, 김민규는 그 많은 이름 중 트릭스터를 택했다. 그게 7년째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가짜 이석민은 그 이름을 마음에 들어 했다. 넌 여전히 날 이석민 이라고 부르길 무서워 하는 구나. 그런 말도 했었다.

“트릭스터는 수 많은 신화 속에 존재하잖아. 그 중에서 오르페우스 이야기는 알고 있지?”

“...”

“그래. 너라면 알고 있을 거야, 민규야. 하지만 오르페우스와 네가 닮은 건 하나밖에 없어.”

무엇이 닮았는 지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와 함께 다시 한 번 4월 1일이 반복되었고, 그 다음 죽음에 와서야 트릭스터는 말했다. 누구도 네게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하지 않았거든. 늘 소금 자루를 들고 똑같은 강을 건너고 있는 거야. 넌 그게 소금인지 알면서도 물에 빠지고, 다시 땅에 발을 딛고 나면 자루가 빈 것을 깨닫지. 소금이 다 녹아 사라지는 걸 알면서도. 그럼에도 다시 소금을 싣기 위해 돌아가. 는 그 일을 7년 동안 반복하고 있었던 거야. 아니... 이제 8년인가.

 

김민규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저 식어 있던 석민의 머리칼을 쓸어 넘겨 주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그가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그걸 들어주지도 못한 채 죽어 버렸다. 그런 생각이 들면 어서 4월 1일이 왔으면 했었다. 앞에서 트릭스터의 한숨 소리가 들려 왔다.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들려 오면, 다시 아침이었다. 일어나자마자 그가 보고 싶다고 했던 영화를 예매했다. 적어도 죽음은 오후 이후니까, 최대한 빨리 극장에 도착한다면 그가 엔딩까지 볼 수 있을 테니까.

트릭스터는 포기하지 않았다. 김민규가 포기하지 못한 아집이 똘똘 뭉쳐 태어난 것처럼. 그 역시도 끈질겼다. 포기해, 민규야. 석민이는 그런 걸 바라지 않아. 너도 알잖아. 트릭스터는 민규가 알고 있으나 무시하는 것들을 귀신같이 찾아내 쿡쿡 찔렀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그에게 되려 물었다.

“넌 대체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그는 입을 다물었다. 신일까, 혹은 악마일까. 이 모든 장치들을 그저 즐기는 것일까, 아니면 무언가를 원해서 내 등을 떠미는 것일까. 9년 째가 되던 해에는 문득 그가 나타나야만 했던 변화에 주목했다. 더 변할 수 있는 것은 뭐가 있는지. 이 앞에는 또 무엇이 있는지.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민규야. 이건 오르페우스의 이야기가 아니야. 로미오와 줄리엣이지.”

그가 처음으로 웃어 보였다. 그것 만큼은 검은 머리의 이석민과 닮아 있어서, 김민규는 문득 명치가 아리듯 아팠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어떻게 사랑하더라. 그리고 어떻게 헤어지더라? 아니.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었더라? 트릭스터는 민규의 옆에 앉아 어깨에 기댔다.

 

“사실 줄리엣은 정말 독약을 먹었어. 아주 약간의 실수가 있었던 거지.”

“...”

“하지만 로미오의 죽음에 감복한 신이, 그녀를 살려낸 거야. 영혼의 무게는 같으니까. 대신 그를 데려간 거지.”

작고, 조용하고. 단내마저 나는 목소리였다. 어떻게 보면 생각의 전환이기도 했었다. 민규는 문득 자신이 10년 동안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을 떠올렸다. 언젠가는, 네가 살아서 나랑 다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는데. 어느 날부터는 네가 그 날 하지 못한 것들을 끝내 들어 주지 못해서 속상했고. 또 어느 날은 네가 바라는 내일을 가져다 주지 못해서 울었다.

김민규는 숨을 골랐다. 수없이 목격한 죽음들을 떠올리면서, 차가운 이석민의 손을 끌어 입 맞췄다. 

내가 하는 게 사랑인지, 그저 사랑했던 기억에 대한 집착인지. 이젠 대답해야 할 때였다.

*

4월 1일의 아침이 찾아 왔다. 김민규는 트릭스터와 거래했다. 만약 네 말이 진짜라면, 죽음을 조금만 미뤄줘. 트릭스터는 알았다고 했다. 그 날은 곧바로 이석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웬일로 일찍 일어났냐는 이야기를 수만 번째 들으며, 김민규는 웃었다. 곧장 데이트 약속을 잡았다. 근사한 곳을 예약하고, 곧바로 백화점에 가서 적금을 털어 반지를 샀다. 4년 째에 했던 패턴이었다. 언젠가 한 번은 프로포즈를 해보고 싶어서. 다시 떠날 너와 조금은 맺어졌단 느낌을 받고 싶어서 했던 짓이었다.

보통 죽음이 다가오는 시간은 오후 7시쯤 이었다. 민규는 곧장 석민의 손을 잡고 예약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단 둘이 있을 수 있는, 가장 고요한 곳에서 그에게 고백했다. 나와 같이 살아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앞으로 함께 하자고도 하지 않았다.

“석민아. 널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어찌 보면 사랑했던 기억에 대한 집착일 수도 있었다. 내 옆에서 웃고 있던 그 장면을, 계속해서 반복하여 틀고 싶었던 것이었다. 허나 그것까지도 욕심이었다. 어쩌면 네 죽음을 받아 들여야 했지만 그러지 못해 받는 벌과 같았다. 그러니까. 벌은 내가 달게 받을 테니까.

 

이석민은 고백을 받고 울었다. 반지를 끼워 주면 한참 그것을 바라 보았다. 김민규는 그의 등 너머 시계를 쳐다 보았다. 7시가 지나 8시를 넘고 있었다. 끝이 다가오지 않을 것처럼, 더 이상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민규는 석민의 손을 잡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래를 이야기 하는 석민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가, 어쩌면 이 순간마저도 이기적인 욕심일 거라 생각했다. 나는 끝까지 너를 놓지 못하고 가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10시가 되어 밖으로 나서면, 당연하게도 바깥 하늘은 깜깜했다. 횡단 보도를 건넜다. 수도 없이 주변을 둘러 보며 그가 차에 치이지 않도록 노력 해왔던 순간도 문득 떠올랐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김민규는 일부러 옆을 보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안도감이 들었다. 옆에서 경적 소리가 찢어질 듯 울렸다. 이석민을 밀치고, 자신을 잡아 먹을 듯 다가오는 헤드라이트를 그제야 바라보았다. 빛에 눈이 멀기 직전, 운전석에 앉아 있던 가짜 이석민을 보았다. 그는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다행이었다.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 더 이상 고통에 찬 이석민의 얼굴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

정적이 모든 것을 집어 삼켰다. 모든 행인의 발걸음이 멈추었지만, 이석민은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저 피를 뒤집어 쓴 김민규만이 보였다. 덜덜 떨며 그에게 기어갔다. 고개를 내려 그의 가슴에 귀를 댔다가 그대로 무너졌다. 비명을 질러도, 그 소리조차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 정적 속에서, 저 멀리서부터 알람 소리가 들려 왔다. 

이석민은 깊은 잠에서 깼다. 방금, 김민규가 죽었다. 죽었었는데. 이석민은 그 사실을 곱씹으며, 멍하니 익숙한 천장을 바라 보았다. 축축한 눈가를 문질렀다. 꿈인가 싶었다. 역시나 축축한 볼을 꼬집으면 생각보다 더 아팠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그런 말을 중얼거리다가, 휴대폰 알람을 끄면 기다렸다는 듯이 날짜가 떴다.

4월 1일. 거짓말 같은 하루가,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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