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VES

KEY WORD : 요리교실
Madeleine Love
1.
세상이 바뀌긴 했나 봐. 응. 바뀌긴 했네.
색색의 앞치마와 한껏 걷어붙인 옷소매들을 바보며 강사 김민규는 그런 생각을 했다. 정확히는 고만고만한 수강생들 사이에 마치 롯*타워처럼 우뚝 서 있는 한 사람을 바라보면서. 그 와중에 그는 "아……. 안보이세요? 죄송해요." 같은 소리를 하며 뒷사람과 자리를 바꿔주고 있다. 긴장한 것처럼 떼굴떼굴 굴러가는 눈동자가 교실 맨 앞에서도 보였다. 손은 조리대 위를 짚었다가, 도마를 만졌다가 다시 왼손을 오른손으로 꼭 쥔 모양새로 돌아온다. 저렇게 긴장할 거면, 차라리 친구라도 한 명 데리고 오지. 그럼 좀 덜했을 텐데. 태평하기 이를 데 없는 감상이다.
강사 김민규의 '생활요리교실(초급)'(화 / 19:00~20:30)은 이 문화센터 분기별 교육 프로그램 중에서도 1, 2위를 다투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담당 직원의 전언에 따르면 수강 신청은 그야말로 '피켓팅'이라고. 친구를 꼬셨다가는 피켓팅의 경쟁자 하나를 더 늘리는 꼴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수업은 대기도 안 받는다. 결론은, 저 외로이 우뚝 서 있는 남자 수강생은 3개월 간 좋든 싫든 이 교실의 청일점으로 지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본인 손으로 수강 취소를 하지 않는 한.
"……준비물 안내는 이 정도면 된 거 같구요. 다음은 절 3개월 동안 도와주실 반장을 뽑아야 하는데. 뭐 특별하게 하시는 일은 없구, 출석 체크랑 공지사항 전달 정도만 좀 부탁드릴 것 같아요."
교실 안에 3초 간의 고요가 흘렀다. 이번엔 모두의 눈동자가 굴러가고 있었다. 귀찮음 반, 그래도 강사와 가까이 지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반이 만들어낸 치열한 눈치싸움이다. 익숙한 분위기다. 민규는 수강생 명부 겸 출석부를 손에 들었다. 복불복으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이름을 부를 작정이었다. 그 순간 누군가의 용기가 침묵을 갈랐다.
"저, 제가……."
애매하게 올라간 손이지만 손가락은 곧게 펼쳐져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온 교실의 이목을 한 곳에 끌어모으는 데 성공했다. 최대한 더 조용히 3개월 동안 수업만 듣다 갈 줄 알았는데 약간 의외다. 물론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실례지만, 대충 3년 간 이 수업을 진행하며 축적한 데이터베이스(aka. 김민규의 '감')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쨌든 자원자가 나온 이상 굳이 복불복을 돌릴 필요는 없었다. 네, 성함이? 출석부 상으로 대충 파악은 완료했지만, 김민규는 침착하게 그와 눈을 마주쳤다.
"이석민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드문드문 박수 소리가 들리고, 청년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든다. 본인 손으로 수강 취소를 할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네 이석민 씨,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가시기 전에 저 한 번만 보고 가세요. 지금 서신 대로 조를 짤게요. 3개월 간 이 모둠으로 수업 받는다고 생각하시면 되구요. 재료가 넉넉하게 준비되기 때문에 오실 때 락앤락 하나씩만 가져오세요. 한 끼 반찬 정도는 하실 수 있을 거예요. 네네. 오늘은 일회용기로 드릴게요. 앞치마는 다들 잘 매고 계시고, 중앙에 놓인 니트릴 장갑 껴 주세요. 거기까지 말했을 때 순간 반장의 얼굴이 흐려졌다. 무슨 문제 있느냐고 말하려던 찰나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어, 선생님."
"네?"
"저는 장갑이 사이즈가……. 아무리 봐도 안 맞을 것 같아서요."
"아."
그러고 보니 수강생 쪽에는 S와 M 사이즈만 비치해두었다는 걸 깜박했다. 민규는 다급하게 서랍을 열고 L 사이즈 장갑을 꺼낸다. 남자 수강생이 한 명 있다고 들었을 때 미리 준비를 해뒀어야 하는데, 출석부 출력이 늦어져서 사무실에 들러 직접 받아오느라 정신이 없었다. 두 장을 쑥쑥 뽑아 가지고 가려는데 이미 그가 눈앞에 공손히 두 손을 내밀고 있었다. 민규는 눈을 깜박인다. 그가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 나서야 제가 그에게 장갑을 건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언가에라도 홀린 기분이었다. 남자 수강생이 처음도 아닌데 왜 이렇게 당황을. 아무래도 오늘은 뭔가 이상하다……. 뒤돌아 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민규는 부자연스러운 침묵에 쫓기듯 입을 열었다.
"오늘은 간단하게 반미 만들어볼게요. 그냥 샌드위치는 조금 뻔하잖아요? 반미는 베트남식 샌드위치고, 고수는 넣고 싶으시면 넣고 아님 안 넣으셔도 돼요. 각자 조에서 두 분씩만 나오셔서 재료 가져가실게요."
__
"선생님."
"네?!"
"보, 보고 가라셔서요. 끝나고."
"아, 아. 네."
장갑을 벗고 머리를 털던 민규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동그란 눈을 깜박이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반장 이석민 씨다. 왜 모두 갔다고 생각했지. 반장보고 잠깐 남아서 보고 가라고 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긴데. 가만, 보통 첫날 반장한테 무슨 얘기를 전달했더라? 왜 제대로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지? 미치겠네. 이석민의 고개가 아주 살짝 기우는 동안 김민규의 머릿속은 백지장이 따로 없었다. 뭐라도 말을 꺼내야 했다. 왼손에 들린 일회용기에는 베이컨 감자채 볶음이 들어있다. 꽤 능숙했던 칼질이 기억난다. 초보 요리 교실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왜 반장 자원하신 거예요?"
"…네? 혹시 남자는 하면 안 되는 건가요?"
김민규 이 멍청아! 도대체 무슨 말을 나불대고 있는 거야! 김민규는 할 수 있다면 제 머리통을 쥐어박고 싶었다. 이석민의 표정이 매우 심각해졌다. 무언가 속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건 불 보듯 뻔했다. 민규는 얼른 다시 입을 연다.
"아뇨, 아뇨. 그게 아니라요. 궁금해서요. 요리 교실 신청하신 이유도 그렇고. 아, 이것도 남자는 하면 안 된다 이런 건 아니에요. 그냥 제가 궁금해서."
"아~ 전 또. 수강 취소해야되나 하고 있었네요."
본인이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혀를 살짝 빼어물고 웃는 버릇은 생각보다 해로웠다. 김민규한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입술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가, 혀가 쏙 들어가자마자 제정신을 차렸다. 큰일났다, 정말.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요."
"아……. 그런 분이 많죠."
여자겠거니, 하는 생각에 바로 심드렁해진다. 이제까지 민규가 만난 남자 수강생이라고는 한 손에 꼽고 한술 더 떠 그들의 수강 사유는 한 손가락에 꼽았다. 여자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내지는 예비 신부에게 점수 따려고. 이것저것 갖다 붙여도 그들의 요리는 스스로의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뭐 그렇게라도 관심 가져주는 게 어디냐 싶기는 하지만. 강의명 앞에 '생활'을 붙인 것도 그래서였는데.
"반장이 할 일이 많을까요?"
"아, 아뇨.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출석 체크랑 공지사항 전달 같은 것만 해 주시면 돼요. 단톡방은 아마 센터에서 열어주실 거예요."
"그럼 공지사항은 혹시 어떻게."
"핸드폰 번호 찍어주실래요?"
다이얼창을 열고 핸드폰을 내밀자 이석민은 신중하게 자신의 번호를 찍더니 돌려주었다. 김민규는 자신의 핸드폰을 받아 든다. 11자리 숫자가 떠 있었다. 수강생 이석민, 그런 이름을 붙여 저장한다. 번호 따인 것 같다. 히히. 그런 혼잣말을 하다가 또 아차 싶었는지 혼자 힐끔 김민규의 눈치를 보면서 죄송합니다……. 농담이었어요. 이러는 수강생은 이제까지 본 적이 없다. 여자까지 포함해서. 적어도 김민규는.
"최대한 귀찮은 일 없도록 할게요."
"귀찮게 해주셔도 되는데."
"……아니에요, 다들 생업이 있으시니까요.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넹……."
왜 풀 죽은 것처럼 말꼬리가 늘어지지. 내 말투가 너무 차가웠나? 김민규는 또 괜히 신경이 쓰인다. 이게 수강생과 강사의 관계라는 게 어쩔 수가 없다. 약간 거리를 두는 게 기본값인데, 거기에 너무 오랜만의 남자 수강생이라 또 어떻게 대해야 할지 묘하게 감이 안 잡혔다. 이게 지금 거리를 너무 두고 있는 건지, 조금 더 가까워도 될지, 가까워진다면 얼마나 가까워질지. 두 손으로 일회용기를 꼭 쥔 채 교실 문을 나서는 뒷모습에 말을 걸었다.
"석민 님."
"네?"
깜짝 놀라 돌아보는 얼굴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애써 평온한 표정을 지켜낸다. 아마 그랬겠지? 사실 자신의 표정을 확신할 수가 없었다. 오늘은 뭔가 이상하다, 아까부터. 칼질 시범을 보이다 실수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일 정도로.
"……다음 수업은 차돌박이 된장찌개라고 공지해주세요. 단톡방 열리면요."
"네!"
순식간에 눈이 휘어지고 입꼬리가 시원스레 올라 붙는 미소였다. 아, 너무 오래 보고 있었다. 김민규는 그만 눈을 감고 싶어졌다.
2.
[석민 님, 안녕하세요]
[5차시 수업이 전에 말씀드린 대로 소갈비찜이거든요.]
[갈비 핏물을 미리 빼야 하는데, 내일 30분만 일찍 와서 도와주실 분이 있는지 공지 부탁드려요]
[한 분이면 돼요]
[엇 쌤, 한 명이요?]
[넹]
[그럼 제가 갈게요ㅎㅎ]
[교실로 가면 되죠?]
[혹시 커피 드세요? 아아?]
3.
식자재마트에서 배달된 소갈비 진공 팩을 뜯고 조별 볼에 나눠 담은 후 찬물을 부어두는 게 전부인 일이지만 혼자 하려면 꽤 고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석민이 와서 도와준 덕분에 금방 끝날 수 있었다. 수업 시작하고 핏물 빠지는 시간 동안은 양념장을 만들고 채소를 손질하면 된다. 민규의 왼손에는 석민이 사 들고 온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들려 있었다. 안 그래도 이 시원한 한 잔이 간절했던 순간이라 체면이고 예의고 차릴 겨를 따위는 없었다. 석민은 흰 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나타났다. 학생인가? 청바지를 입고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이 많은가? 사실 잘 모르겠다. 김민규는 태어나서 한 번도 사무직이라는 걸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또 흘끔거리는 걸 눈치챘는지, 석민이 이쪽을 바라보고 웃었다.
"제 직업 추리하고 계셨죠."
"추리, 까지는 아니고요."
괜히 머쓱해져 커피만 쪼옥, 빨아들였다. 독심술이라도 쓰는 거야 뭐야. 투덜거려봐도 이미 석민에겐 들킨 것 같다.
"사무실이 좀 자유로워요. 친한 형이 설립한 스타트업이라서."
"아, 그렇구나. 그럼 그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에? 아."
의아한 듯 커졌던 석민의 눈이 다시 원래 크기로 돌아왔다. 씩 웃는 얼굴에 문득 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이러면 안 될 것 같은데. 왜 안 되느냐면, 그냥 안 될 것 같은데.
"궁금하세요?"
"아니, 대개 남자분들 같은 경우에는 여자친구나 와이프분한테 잘 보이고 싶은 거더라구요. 석민 님 같은 경우에는 그게 아니라 그 대표…… 친한 형 분이신가 하고요."
"아하. 대개는."
망할 아이스아메리카노는 양도 왜 이렇게 적은지, 세 모금 마셨더니 벌써 바닥이 났다. 이상하게 목이 탔다. 어쩌면 그냥 빨리 확인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석민 수강생에게는 잘 보여야 하는 사람이 있고, 그를 위해 요리를 배우러 온 거고, 그러니까 김민규와 다른 식으로 엮일 가능성 같은 건 없다고. 이 얼음 컵을 얼굴에 대서 열을 식히는 게 더 이상해 보이겠지. 차라리 이 자리를 피하는 게 낫겠다. 시계를 보니 수업 시작 5분 전이다. 저 화장실 좀, 하고 일어나려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손목을 붙잡아온다.
"저, 쌤."
"네?"
"끝나고 잠깐 시간 되세요?"
"시, 시간이요?"
"제가 오늘 앞에 30분 도와드렸으니까, 저 30분만 도와주세요. 저번에 가르쳐주신 대로 계란찜을 해 봤는데 뭔가 잘 안돼서, 여쭤보려구요."
"여기 달걀이 없을텐, 네."
솔직하게도 주워섬기던 주둥이를 멈춘 건 이석민의 찌푸린 미간이었다. 눈치가 없니? 라는 표정은 아마 제대로 읽은 게 맞을 것이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따로 봐야 하는 용건이 있는 모양이다. 어쨌든 정말 수업 시작 전에 화장실은 다녀와야 했기에 김민규는 조심스레 이석민의 손을 떼어냈다. 순순히 떨어지는 손목이 왠지 아쉬운 건.
칼질부터 뭔가 예사롭지 않다 했더니,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채소를 돌려깎고 있는 이석민의 모습에 김민규는 머리카락을 쥐고 소리 지를 뻔했다. 갈비찜에 들어가는 당근이나 감자는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 국물이 탁해지는 걸 방지한다. 근데 적어도 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 중 강사가 얘기하기 전에 먼저 저걸 하는 사람은 한 번도 못 봤다. 어디서 본 걸 흉내 내고 있는 것도 아닌 게, 껍질이 일정한 두께와 굵기로 깎여 나오고 있다. 이 사람 초보 교실에 왜 있는 거냐고, 도대체. 이쯤 되면 분반을 착각한 게 아닐까? 단톡방 이름은 제대로 '생활요리교실'로 되어있는데. 우와아, 석민 씨 진짜 잘한다. 같은 조원이 감탄하자 석민은 쑥스럽다는 듯 웃는다. 손에 칼이 들려있지 않았다면 손도 내저었겠지만. 뒤에서 황당해하는 강사(김민규)는 보이지도 않는지 아주 화기애애하고 난리다. 수업을 마무리 짓고 수강생들이 다 간 뒤, 뒷정리 겸해서 남은 건 석민과 민규 둘 뿐이었다.
"제가 이제까지 뭘 여쭤봤었죠?"
"네?"
"석민 님한테 제가 여쭤본 거요. 왜 반장에 자원했는지랑."
"아, 그리고 왜 요리 교실 신청했는지도."
"네. 그럼 하나만 더 여쭤볼게요. 왜 초보 교실 신청하신 거예요?"
"네?"
이 질문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놀란 얼굴로 석민이 민규를 바라본다.
"아까 갈비찜 만들 때요. 채소들 돌려깎기 잘 하시던데."
"아……. 그건 엄마 하실 때 눈으로 보고 배웠어요."
"칼질은 눈으로 못 배우죠."
사실 본인이 초보라고 생각하면 초보반을 신청하는 것이지, 별다른 이유는 없다. 석민이 그렇게 말하면 민규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왜 자꾸 말은 서늘해지고, 표정은 삐딱해지는지. 심문하는 것도 아닌데. 석민이 무언가 마음 먹은 표정으로 다가온다.
"왜 초보반 신청하셨는지 물으셨죠."
"네. 중급반 가셔도 잘 하실 것 같은데."
"선생님 때문에요."
"네?"
"선생님 때문에 여기로 왔어요. 작년에 하신 문화센터 소식지 인터뷰 보고. 저 그거 구독하거든요."
"어.
"잘생기셔가지구. 선생님한테 꼭 배워보고 싶었어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친구들이 다 뭐 하러 자취 10년 차가 초보반을 가냐, 가봤자 눈치만 보이니까 유튜브나 보면서 따라 하라고 말려도요. 반장도 그래서 했구, 오늘 도와줄 사람은 단톡에 물어보지도 않고 제가 온 거고, 커피도 그래서 사 왔고요. 선생님이랑 친해지고 싶어서. 더 궁금한 거 있으세요? 불편하시면 수강 취소할게요."
"아니, 그건 아니고요!"
"안 불편하세요?"
"그……. 달, 달걀찜 봐달라면서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석민의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 석민이 문 쪽에 있어서 언제든 나갈 수 있는 위치였기 때문이다. 이대로 보내면 정말로 수강취소를 하고 다시는 눈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런 분위기가 직감적으로 느껴진다. 김민규는 눈을 꼭 감고 심호흡을 한다. 이석민은 아무 말도 없었다.
"석민 님."
"네."
"저 안 불편해요. 친해지는 것도 좋죠. 근데 친해진다는 의미가 그냥 친구 맞나요?"
"……그건,"
"저번에 했던 귀찮게 해도 된다는 말, 아직 유효해요?"
"선생님이라면, 네."
김민규는 눈을 꾹 감았다 뜬다. 이 말의 의미를 아직까지 모르는 게 바보 천치다. 이건 이석민이고 김민규고 둘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었다. 아마 처음 본 그날부터.
"친한 형은요?"
"걘 진짜 친한 형."
"아……. 그렇구나. 그럼 저랑 달걀부터 사러 가요."
"지금요?"
"네. 여긴 이제 문단속하고 비워줘야 하니까, 달걀찜은 저희 집에서 만들죠."
"……그래도 돼요?"
"저 혼자 살아요."
우와, 하며 석민은 헛웃음을 흘린다. 선생님 귀가 좀 빨개졌네요. 그렇게 말하는 석민의 손목도 민규가 느끼기에는 조금 뜨거워져 있었다. 나 이제 달걀찜 장인 되겠네, 쌤한테 과외도 받고. 중얼거리는 혼잣말에 그럴 시간이 있을까요, 하는 말은 차마 돌려주지 못했다. 저 가방 좀 챙겨 올게요. 민규의 손을 풀어내고 뒤도는 귓가도 못지않게 빨갰다. 민규는 입술을 깨물며 웃는다. 3주 남은 강좌에 아쉬움은 단 일 그램도 남지 않았다. 강좌가 끝나도 계속될 사람이 있어서.